왜 잘하는 엔지니어는 떠났고, 나는 왜 떠나기로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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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의 최고 엔지니어들이 다른 곳에 면접을 보고 있을까 | GeekNews

조직 내 정보 필터링 구조로 인해 경영진은 엔지니어들의 불만을 퇴사 통보 후에야 알게 되며, 이미 수개월 전에 결정된 퇴사를 되돌리기엔 너무 늦음엔지니어들이 퇴사하는 진짜 이유는 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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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 이직을 멈추는 경제적 개입 방법 | GeekNews

시니어 엔지니어 이탈 문제는 정보 흐름이 아닌 경영진 인센티브 구조의 문제이며, 분기별 성과에 최적화된 보상 체계가 장기 투자를 요하는 인재 유지와 근본적으로 충돌시니어 엔지니어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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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돈 보고 퇴사하지 말라고들 한다. 그치만 돈은 중요하다.......

그래도 개발자가 이직을 결심하게 되는 이유 중 가장 큰 점은 단순한 연봉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아마도 "해당 연봉 대비" 감당해야 하는 무언가가 아닐까?

 

아티클에서는 엔지니어가 회사를 떠나는 이유를 연봉이 아니라, 기술적 판단이 무시되거나 의미 없는 업무 구조 속에서 결정된다고 말한다.

보상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마른 낙엽이 가득 쌓인 산에서 캠핑을 하며 불을 피우는 것과 비슷하다.

아무리 소화기를 들고 있어도 불은 잠시 꺼질 뿐이고, 그 위에서 다시 불을 피우면 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미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이 글을 읽었다.

결정은 끝난 상황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공유받은 이 글에서 한참을 멈춰 섰던 이유는, 이 글이 내가 그동안 느껴왔던 고민과 지금의 선택을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사 예정인 회사의 2차 면접과정에서도 비슷한 질문과 관점을 접하면서 내가 느끼던 감정과 판단이 개인적인 예민함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회사를 싫어해서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애정이 너무 많아서, 그 감정이 증오에 가까워질 정도였던 것 같다.

정말 단어 그대로 애증의 첫 회사였다.

동료와 일에 대해서도 많은 애착 역시 분명히 있었다.

 

문제는 그런 감정보다는 내가 놓여 있던 위치였던 것 같다. 

문제는 분명히 보였지만 그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는 참여할 수 없었고 결과에 대한 최종 책임을 지는 위치도 아니었다.

다만 연차가 쌓이면서 문제를 정리하고, 여러 대안을 비교하고, 각 선택에 따른 리스크를 설명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내 역할이 되었다.

그 자체가 부담이거나 부당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오히려 개발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역할이 확장되는 과정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만 그 판단이 실제로 어떤 결정으로 이어졌는지, 혹은 왜 이어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정리는 조직 안에 명확하게 남지 않았다.

판단이 맞았던 경우에도 다음 선택을 위한 공식적인 기준이라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참고되는 정도로만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업무처리의 맥락과 근거가 체계적으로 축적되기보다는, 그때그때 소모되고 지나가는 느낌에 가까웠다.

나는 최종 결정을 내리는 위치는 아니었지만, 판단을 준비하는 비용과 설명이 반복되는 부담은 계속 감당하고 있는 상태에 가까워졌다. 이 간극이 반복될수록 문제를 정의하고 판단을 만드는 일 자체가 점점 소모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판단이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피드백은 거의 없었고, 사전에 제시했던 방향이 맞았다는 확인 역시 남지 않았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의사결정을 내리는 위치는 아니었지만, 의사결정이 지연되거나 보류될 때 발생하는 혼란과 부담을 계속 떠안고 있는 상태에 가까워져 있었다.

 

이 상태에서 가장 피로했던 것은 일의 난이도가 아니라 무력감이었다.

설득이 반복될수록 판단은 공적인 것이 되지 못하고, 점점 개인의 주장처럼 취급되었다.

물론 협업 관계에서 내 주장만을 강요할 수는 없다.

다만 당시의 구조는 협업이라기보다는, 판단이 결정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없는 상태에 가까웠다.

충분한 근거가 있어도, 실제로 문제가 발생해도, 사전에 예측했던 흐름이 그대로 와도
그 판단은 "맞았다"라는 평가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지나간 일이 되었고 나는 점점 그 자극에 의해 예민해지고 지쳐있었다.

'아, 이건 결정될 일이 아니구나. 그래도 설명은 해보자...'

어느 순간부터 일은 계속했지만, 내 판단은 조직 밖으로 밀려나 다음 선택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이 모든 과정에서 수고에 대한 보상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잘 굴러간 일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전처리 덕분에 문제가 생기지 않은 일은 평가되지 않았다.

개인이 감당한 역할의 차이는 점수로 남지 않았고, 때로는 입사 동기들과 묶여 동일하게 평가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인정욕구가 있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실은 꽤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인정받고 싶었던 게 맞다.

다만 내가 원했던 인정은 박수나 칭찬이 아니었다.

내가 한 판단이 의미 있었고, 조직에 도움이 되었고, 다음 결정을 위한 근거로 남았다는 확인.

그 정도면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최소한의 확인조차 없는 환경에서 사람은 결국 자신의 판단을 사적으로 소비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 조직은 더 이상 나에게 '판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즉, 나는 시니어도 아니었고 최종 결정권자도 아니었지만 내가 한 판단이 조직 안에서 의미있게 이어질 수 있는 구조는 아니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가장 지쳤던 것은 일이 아니라 설명이었다.

업무량이 많아서도, 야근이 잦아서도, 해결 불가능한 장애 때문도 아니었다.

개발자인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결과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라기보다, 결정되지 않은 선택의 여파를 정리하고 감당하는 역할에 가까워져 있었다.

판단을 제안하는 것보다 그 판단을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었고,

그 설명이 실제 결정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마음은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회사를 완전히 미워할 수는 없다.

그만큼 많은 시간을 보냈고 많은 것을 배웠으며, 무엇보다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애정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고민하지도 이렇게까지 소모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직이란 선택은 미련을 버리는 결정이라기보다는 애정이 있었기에 더 늦기 전에 내려놓은 결정에 가까운 것 같다.